"100세시대에 50.60대의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엄마는 항상 주부여야만 할까? 전업주부가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없을까? 정년 뒤에도 일하고 싶어 하는 중년은 많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구직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청년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 도태되는 50~60대, 특히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남성에 비해 더욱 기회가 없는 여성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제주 일도 2동에 위치한 ‘인화로 사회적 협동조합’의 일자리 사업단 ‘늘솜창작소’는 중장년 일자리 창출의 좋은 사례로 늘솜창작소의 11명 직원 평균 나이는 60대다. 제주 ‘늘솜창작소’는 주민들의 취미 동호회로 시작해 천연 염색과 자원 재활용(업사이클링) 일자리를 만들어 마스크와 스카프, 인형 등을 판매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일자리 공동체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산 고기자 소장(61)은 3년 전 늘솜창작소에서 첫 직장을 가졌다.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는 고 소장에 늘솜창작소를 물었다.

취미 동호회로 시작한 늘솜창작소

직접 염색한 천을 보여주는 고기자 소장.
직접 염색한 천을 보여주는 고기자 소장.

"안녕하세요. 신문기자 아니고 고기자입니다. 늘솜창작소에서 소장으로 일하며 천연염색도 하고 전체적인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친근한 옆집 아줌마처럼 농담을 던진 고기자씨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며 늘솜창작소를 소개했다.

"늘솜창작소의 시작은 취미 동호회였어요. 처음에는 처음에는 직업이 될 줄 모르고 천연염색을 좋아하는 사람, 재봉틀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입지 않는 옷을 갖고 리폼을 하면서 염색을 해보자는 취지로 모두 모였어요."

50~70대 가정주부 10명이 모여 인화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염색 교육을 받던 중 ‘매장을 열어 일자리로 키워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중년 여성의 능력을 활용하고 자원 재활용까지 하는 일자리 공동체를 목표로 ‘늘 솜씨가 좋다’는 의미가 담긴 지금의 늘솜창작소가 시작됐다.

골칫덩어리에서 예술작품으로, 제주를 담는 헌옷 리사이클링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오염된 티셔츠.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오염된 티셔츠.

늘솜창작소는 제주의 다른 천연염색 매장 대부분이 감물 위주인 것과 달리 쪽물염색을 주로 한다. 헌옷을 매장에 가져가 염색하는 체험프로그램은 5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흰 티에 이물질이 묻어서 버리기는 아깝고 집에 놔두는 처치 곤란한 옷들이 많잖아요, 그런 옷들을 천연염색을 해서 새로운 옷으로 탄생시켜요. 한 벌에 5000원으로 저렴해서 어린이집부터 학부모까지 체험하러 많이 와요."

판매하고 있는 천연염색 스카프.
판매하고 있는 천연염색 스카프.

고 소장은 손수 만든 천연염색 앞치마와 스카프,모자, 손수건 등 다양한 상품을 소개했다. 모든 직원은 재활용 인형도 만들고, 브로치 작업도 한다. 늘솜창작소에선 우리에게 필요 없었던 것이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모든 상품의 공통점은 새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모두 자투리 천이나 재활용 제품을 사용해요. 지금 쓰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삼다수 페트병을 가지고 천을 만들어 그 위에 디자인을 새기거나 감물을 들여 새 작품으로 탄생시켜요. 감물염색, 쪽물 염색으로 커튼을 만들기도 해요. 저희가 만드는 모든 상품의 의미는 자원 재활용이에요."

지역을 생각하는 늘솜창작소 

지역주민 대상 무료교육.
지역주민 대상 무료교육.

늘솜창작소는 지난 해 일도2동 경로당에 감물 마스크 250개를 제작해 기증했다.

"늘솜창작소에서 일하며 뿌듯하고 보람됐던 일은 작년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잖아요, 그때 다른 상품을 만들다 남은 자투리 천으로 면 마스크를 만들어 동네 노인분들께 250장을 만들어 기증했어요. 그분들이 마스크를 써보니 숨쉬기도 좋고 해서 입소문으로 퍼져 그해 마스크가 굉장히 많이 팔렸어요. 이렇게 어려운 때에 우리가 봉사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어요. 또 이렇게 좋은 마음을 먹으니까 실제로 작년에 마스크 덕분에 매출이 많이 올랐어요."

지역 주민을 위한 무료 교육도 인기다. ”지역조합원을 대상으로 무료교육도 진행하고 있어요. 한 번에 10명 정도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예약이 꽉 차요. 그만큼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에요. 이번주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예약이 꽉 차 있어요.”

전업주부에서 직장인으로 

“늘솜창작소에서 일하기 전까진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내조하는 평범한 전업주부였어요. 그러다 환갑의 나이에 첫 직장을 갖게 됐어요.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늘솜창작소가 아니면 61세 이 나이에 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의 반응은 어땠을까?

“남편이 처음엔 반대했어요. 원래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보단 집에서 내조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좋아해요. 자식들도 대단하다며 인정해요. 자식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었어요. 친구들은 퇴직할 나이에 직장을 갖는 것에 대해 부러워해요. 저도 제 자신이 능력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사회에 필요한 구성원이 된 것 같아 뿌듯하고 자부심이 들어요.” 고기자 소장이 뿌듯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직장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것의 불편함은 없는지 물었다.

“우리 모두 가정주부이기 때문에 집에 제사도 있고 부득이하게 볼일이 생길 때가 많아요. 그래서 늘솜창작소의 좋은 점이 근무시간이 유동적이라는 거에요. 매장이 주 6일, 토요일에도 열기 때문에 주중 일이 생기면 하루 쉬고 토요일에 근무해도 되요.  일이 생기면 저녁 6시 전에 일찍 퇴근하기도 하고요.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 중년여성이 일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에요.”

늘솜창작소를 처음 제안한 인화로 사회적 협동조합 송창윤 이사장(52)은 "사회적 소외 계층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한 실정이다"며  "중장년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일자리 모델을 만드는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거기다 인공지능이나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빠르게 변하는 산업구조에 50·60대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중장년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관심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인화로 사회적 협동조합은 제2, 제3의 늘솜창작소를 만들어 중장년층을 위한 일자리를 늘려갈 계획입니다."

여름이 다가오는 봄의 끝자락, 땡볕 아래 쪽물 염색이 고되지도 않은지 늘솜창작소 직원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바쁜 노동에도 이들을 웃게 하는 것은 직장에서 얻는 소속감과 보람이 아닐까?  <신문제작실습 / 2019102110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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