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창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졌을 때 읽은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글보다도 기사에 쓰인 사진이 머릿속에 오래 머물러 있는데 바로 우크라이나의 할머니가 낮은 포복 자세를 하고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다. 옆에서는 한 군인이 올바른 조준 위치를 겨냥하는 것을 도와드리고 있다. 비장한 표정과 안정적인 자세의 할머니를 보다 보면 누가 군인인지 구별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기사의 제목이 기억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망치나 칼을 들고서라도 힘차게 싸우겠다”이 외에도 “내 나라에서 뭐 하는 거냐”며 러시아 군인의 얼
오전 5시, 새벽의 적막을 깨는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지영아, 할아버지 돌아가셨대.”“응. 알아.” 10살이던 내가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답한 말이다. 긴 꿈을 꾼 후였다. 성격 불같기라면 빼고 말할 수 없고, 어느 동네에나 있는 호랑이 할아버지. 노량진에서는 단연 우리 할아버지 담당이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부처님처럼 큰 귀, 나이에 비해 큰 키까지. 성격과 딱 맞는 외모셨다. 그런 인물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나의 탄생이다. 첫 손녀라 불면 날아갈 듯 쥐면 꺼질 듯 안았다가, 업었다가 어
제주에 내려온 지 벌써 2년째. 제주의 푸르른 언덕과 따뜻한 바람 속 짠 내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바다는 날 항상 설레게 한다.넓게 퍼져 모든 걸 삼킬 것 같은 동해, 밀물과 썰물의 매력에 헤어 나올 수 없는 서해는 왠지 모르게 다가가기 힘든 적이 많았다. 이유 모를 웅장함에 압도당한 것일까?반면, 제주 바다는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높디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바다를 향해 달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덜컹거리는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점차 푸르게 물들어간다. 건물의 층고는 점점 낮아지고, 여름을
경하의 꿈은 어둡고 무서웠다.검은 통나무들이 누워있는 캄캄한 곳에 갑자기 물이 차오른다니.계속 이런 꿈을 꾸던 경하는 친구 인선의 연락을 받고 간 병원에서 자신의 집에 있는 새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주로 내려온다. 이곳에서 인선과 그녀의 어머니 정심의 가족사와 그들에게 얽혀있는 여러 가지 일을 알게 된다.“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 나간 사람들 말이야
산과 바다 등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반긴다. 이 중에서 나는 바다를 유독 좋아한다. 낮에 보는 바다와 밤에 보는 바다 두 개 또한 다르다. 낮에 보는 바다는 햇살 빛에 반사되어 찰랑찰랑거리는 아름다운 윤슬과 그 주변에 재미있게 노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편 밤에 보는 바다는 해가 저물어 흑백 빛 바탕에 배들, 가로등의 빛과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바다를 놀러 가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고 오는 거는 필수였다. 뛰놀았던 평야 같은 넓은 백사장에서 발자국을 남기고 소라게를 잡으면서 웃고 떠들며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마다 가는 곳이 있다.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하도 해수욕장’이 바로 그곳이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나는 하도 해수욕장을 찾는다. 가만히 앉아 파도 소리를 듣는 것만큼 여유로운 게 또 있을까? 하도 해수욕장의 파도 소리는 크지 않아 더욱 여유롭다. 모래를 당기는 파도, 햇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볼 때 비로소 여유를 느끼게 된다. 맑은 날에는 머리카락이 살랑일 정도의 바람이 여유를 불러온다. 이곳에 있으면 잡생각이 없어진다. 맑은 바다에 들어가 서핑을 즐
18살, 나의 철부지 시절의 이야기이다. 본격적으로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보다 하나 낮은 2학년이라는 딱지는 왠지 모르게 학업의 부담에서 한참 떨어져있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해외여행, 펜션, 캠핑 등의 놀러가자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었다. 여러 좋은 의견들이었지만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다 나온 의견은 도보 여행이었다. 교통비를 최대한 아끼며 오랜 시간동안 재밌게 놀 수 있을거란 생각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찬성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
지극한 사랑을 위해 마음 쓰는 일언론홍보학과 2020102104 서정현 무참한 폭력이 짓밟고 간 자리엔 남은 사람의 짓밟힌 마음이 있다. 누군가는 전부를 잃었다.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두려울 것이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그들은 작별하지 않는다. 그 날과도, 그 이와도, 그 곳과도. 엄청난 고통이 덮칠지라도 그들은 결코 떠나보내지 않는다. 있는 힘껏 맞서고 또 맞선다. 지난 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와 나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내가 꽤 자라고 나니 낯을 가렸던 것이다. 할머니는 어느날 갑자기 암
전쟁이라 하면 한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전부이다. 전쟁에 대해 왜 배워야 하는지, 왜 알아야 하는지 모른 채 전쟁에 대한 교육을 받아왔다. 그리고 교실에서 마주한 질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어떻게 다음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였다. 이 칠판 앞에서 던져진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이들은 거의 남학생들이었다.그리스 신화에서도 군신인 아레스보다 전쟁의 여신인 아테네가 더 유명했지만, 땅 위에서 전쟁이란 기록이며 공부까지도 거의 남성의 영역이다. 즉 남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전
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난히 동물을 좋아했다. ‘어쩌면 전생에 동물이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동물을 사랑했다. 일요일 아침, 햇살이 살며시 눈꺼풀을 두드리면 코끼리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반쯤 열고 리모컨부터 손에 쥐어 TV를 틀었다. 바로 아침 9시 30분 시작하는 ‘TV 동물농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항상 ‘WHY? 동물’, ‘도전! 꼬마 애견 수의사’와 같은 동물 만화책을 읽고 컴퓨터로 새로운 동물 사진을 찾아보며 바탕화면을 바꾸는 게 취미였던 나에게 TV 동물농장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전국 곳곳, 심지어 해외의 동물
평소 무언가를 결정하는데 다들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나는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는 편이다. 혼자 있을 때도 그렇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머뭇거리는 이유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편인데 혼자 있을 때는 호기심 그리고 타인과 관련되어있을 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혼자서 무언가를 할 경우 모든 결정에 따른 책임 나 혼자 지면 된다. 그렇기에 결과가 좋고 나쁨을 신경 쓰진 않는다. 다만 처음 보는 새로운 선택지가 있고, 그것이 내 시선에서 꽤나 흥미로워 보이면 평소 즐겨하는 선
2022년 4월 3일, 어느덧 74주년. 새하얀 벚꽃 잎이 비를 맞으며 눈꽃이 되어 휘날린다. TV에서만 종종 봐 왔던 정치하시는 분들이 제주추념식에 참석했다. 그 사람들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TV화면을 가득 채우고 흐느껴 울고 있다. 4.3사건의 유족들이다. 유족들의 헌화와 분양에 하늘도 슬픈 듯 굵은 빗줄기로 그분들의 설움에 대답을 하고 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제주에만 국한된 애도의 날
지금의 나를 만든 그 시절어릴 적 우리 가족은 매년 외할머니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키웠다. 넓지도 적지도 않은 텃밭. 그 텃밭에 가면 햇빛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오이, 물방울이 대롱대롱 맺혀있는 고추, 주먹 크기만큼 자란 수박, 불그스름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방울토마토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린 우리와 바쁜 부모님은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래도 할머니의 보살핌 덕에 방울토마토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어느덧 선선한 여름이 오면 우리는 할머니를 도와 잘 자란 채소와 과일의 수확을 도우러 갔다. 동생과 나는 할머니의 휘황
담담함에 욱신거리는 아픔들는 경하와 인선의 경험을 통해 제주 4.3의 아픔을 풀어나간다. 작품 속 고통 묘사는 사실적이다 못해 괴롭게 느껴졌다. 주인공 경하의 친구 인선의 손가락이 목공방에서 작업하던 중 잘렸다. 이어 붙인 손가락의 신경 회복을 위해 인선은 3시간마다 바늘에 손가락을 찔린다.이어 책에서는 제주 4.3 피해자들의 고통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서술한다. 이러한 부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신경도 함께 욱신거렸다. 글을 읽고 신경이 욱신거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여성의 전쟁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전쟁에 대한 나의 인식 때문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이고 굳혀진 전쟁의 이미지는 남성의 것이었고, 여성은 항상 보조의 역할이었다. 심지어 현재 수강 중인 교양수업 에서도 여성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전쟁사 속 여성은 낯설고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왔다.나는 늘 책을 읽기 전 제목을 통해 내용을 추측해본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늘 말했듯, 여성들을 참전시키지 않은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펴보니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참전했다. 조국인 소
사실 제가 이 책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들었던 기분은, 대체 무슨 의미로 이런 제목을 지었냐는 감정이었습니다.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소설인가? 여자들이 전쟁에 참전 못했다는 것을 비탄하는 성평등 수필인가? 뭐 독후감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또 다른 재미없는 수필 책이겠지.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저는 제 예상이 전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가장 크게 빗나간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쯤에 가서야 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부분이 나오겠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미숙한 생각이었습니다.
벅차오르는 그 얼굴언론홍보학과 2020102104 서정현 10살의 어느 날, 엄마는 동생이 생겼다고 말했다. 자그마치 10살이나 먹은 나에게 갑자기 동생이 생겼다니. 친구들 누구에게도 10살 차이나는 동생이 있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동생이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컸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참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엄마의 배는 풍선을 불어놓은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불러갔다. 배가 불러올수록 엄마 뱃 속의 동생과 나는 친해져갔다. 꼬물이라는 태명도 지었고, 태명을 딴 노래도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충청북도 옥천에 위치한 군서면 동평리라는 곳에서 살았다. 군서는 사람이 드문 촌 동네였다. 내가 다녔던 집 앞 5분 거리의 군서 초등학교의 전교생은 60명 내외였다. 그 중 10명 정도는 내가 살았던 동평리 마을 곳곳에 살았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악속이라도 한 듯 모여 놀았다. 특히 학교 가까이였던 동평리는 가장 놀기 편한 곳이었다. 나보다 5살 많은 우리 오빠는 동네 친구가 1명 밖에 없었던 나와 달리 친구가 많았다. 5명의 오빠 친구들은 나를 여동생처럼 아껴주고 잘 놀아줬다. 그 중에서도 옆 집에
Ⅰ. ‘한강’의 작별 속으로 10대 시절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내가 느낀 ‘채식주의자’는 진한 아픔을 담고 있었고 날것의 느낌이 나는 문장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신선한 주제와 글의 흐름이 책에 시선을 머물게 했다. 심각하게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본 만큼 책 분위기가 기억에 선명했다. 쉽지 않은 내용에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그때 책을 읽으며 느꼈던 묘한 감정을 꼭 다시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수업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다시 마주했을 때 얼른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강 작가가 쓴
나에겐 징크스가 있었다. 2학년은 힘든 해라는 것. 2018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 해도 징크스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매일 아침, 전날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미루다 겨우 무거운 눈을 억지로 떴다. 내 상태를 대변해주는 축 늘어지게 걸린 교복을 느릿느릿 챙겨 입고 등굣길에 나섰다. 학생들이 가득한 길에 나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일상을 시작했다. 학교에 도착한 후 시간은 눈 깜빡 한 번이면 식사 시간, 두 번이면 종례 시간이었다. 교실 앞쪽 천장에 달린 조그마한 검정 스피커에서는 나를 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길게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