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 아이들은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것을 배운다. 성공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해진 현대사회. 제주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아이들이 제주라는 생태 터전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즐겨야 하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배우기 위해 제주 자연을 즐기는 색다른 학교가 있다. 환경과 교육이 만난 곳. 작지만 아이들을 위한 세상을 담아냈다.

'곶자왈작은학교' 외부 모습과 푯말.
'곶자왈작은학교' 외부 모습과 푯말.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곶자왈작은학교’. 작고 고요하리만큼 조용한 마을에 학교라기엔 자그마한 집의 모습이다. ‘곶자왈작은학교’라고 쓰인 초록색의 친절한 푯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이 마저도 초록빛 배경에 자연스레 숨어있어 몇 발자국 더 가다가 발을 돌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앞에 또 다른 알록달록한 푯말이 보였고, 문을 열자 모여 앉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작은 공간이 차있었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는 문용포씨를 만날 수 있었다. 환하게 웃어주던 그의 눈은 세월이 느껴짐과 동시에 아이와 같은 맑음이 담겨 있었다.

“편하게 앉아서 잠시 기다려주세요”라는 말에 앉아 귀를 기울이니 하루 일정을 정하는 중이었다. 학교의 일정이라기엔 조금 달랐다. 근처 하천으로 가 오카리나 연습하기, 팻말 만들기, 밤엔 지구를 위해 불 끄고 놀기, 틈날 때마다 책 읽고 놀기. 배우러 오는 곳인 학교인데 공부 일정은 없었다.

그의 나가 놀으라는 말에 한 아이가 “자유를 찾아 떠나자”라며 환히 웃었다. 이어 “머털은요? 머털도 같이 가서 놀아요. 전 머털이랑 노는게 제일 좋은데”라며 귀여운 어리광을 잠시 부리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이들이 나가고 빈 학교에서 문용포(56) 아우름지기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을 ‘머털’이라고 소개하며, 아이들에게서 선생님이 아닌 머털로 불린다고 했다.

'머털'이기 전,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을 꿈꾸다

머털이기 전의 문용포씨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하고 싶다는 마음에 대학생 시절부터 사회 운동을 했었다. 그러다 제주범도민회 회원으로서 우연히 제주 오름 훼손에 대한 전시 현장을 안내하다가 방송사 인터뷰를 하게 됐다. 인터뷰를 통해 우연 겸 필연으로 환경 운동을 하게 됐고, 단체의 회원에서 활동가로서 제주 오름이나 한라산을 지키는 운동을 했다.

그는 환경교육운동가이기도 하다. 환경 운동가로서 활동하면서 어린이, 청소년에게도 지구 환경과 제주 환경을 알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더 나아가 환경을 중심으로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미래세대와 찾겠다고.

아이들을 좋아했고, 교사를 꿈꿨던 문용포씨. 꿈을 펼치고자 환경운동을 줄곧 하면서 프로그램마다 어린이 오름학교로 시작해 한라생태학교, 길 위의 학교처럼 학교 이름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고 싶었다. 이슈를 다루는 단체에서는 꾸준히 아이들과 함께하기 어려웠다.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는 “나라에서 인정해야만 교사가 되는걸까요? 어떤 특별한 공간이 있어야만 학교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세상과 자연이 학교고, 아이들과 걸어가는 그 길이 학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 문제가 없었고, 가능성이 눈 앞에 보였다. “삶이란 게 공부고, 누구나 같이 다니면서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게 있듯이 교사도 누구나 될 수 있는거죠”라며 미소 지었다. 

선흘에 피어난 '곶자왈작은학교', 머털의 길

세상에서 아주 작은 섬. 그 중 작은 마을인 선흘. 선흘의 더 작은 분교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피어난 곶자왈작은학교. 그렇게 문용포씨는 머털이 됐다. 그는 이 곳에서 아시아를 넘어 국제캠프까지 진행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없었다는 머털. 아이들도 “머털 정말 인싸네요!”라며 엄지를 들어 인정할 정도로 좋은 친구들을 둔 덕분에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곶자왈작은학교는 틈새학교이다. 일반적인 학교가 아닌 가치 중심 학교로 날마다 열리는 것이 아니라서 마을 아이들에게 반가움을 줄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어떤 것들을 학습할까?

천미천에서 피켓운동 중인 아이들. (출처=곶자왈작은학교 네이버 카페)
천미천에서 피켓운동 중인 아이들. (출처=곶자왈작은학교 네이버 카페)

머털은 “환경운동가들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을 항상 해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민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하되,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라며 아이들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문 기사와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손팻말을 제작해 응원의 피켓운동을 하고, 오카리나 연주 영상을 찍어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올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유한다.

2007년부터 아이들과 함께 평화 장터를 열어 판매 수입금을 매년 아시아 곳곳에 꾸준히 기부해왔다. 작은 도서관을 아시아 나라마다 만들기 위해 아이들과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직접 기여한다. 돈을 보내는 것보다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다며 아시아 각국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고.

그는 곶자왈작은학교뿐만 아닌 마을 학교에서 요청하는 방과후 수업에 나가기도 한다. 이곳저곳 다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구적인 문제를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해본다. 곶자왈작은학교를 크게 만들기 위한 목표를 세운 적도 없었고, 지금도 그럴 계획은 없었지만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조금씩 해나간 것들로 여러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대안학교를 설립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다 거절했어요. 그러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이 정도의 규모가 나도 행복하고, 나를 만나는 아이들도 행복할 정도인 것을 확신했죠”라고 말했다.

“저희가 노력해야죠,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바라는 제주 환경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머털은 환경과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활동한지 20년이 넘었고, 변한 것은 매우 많다고 답했다. 지금 이대로 지켜졌으면 좋겠지만 산업화로 인해 미래 세대에는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른다고 했다. 확실히 이제는 어른들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러곤 머털은 생각에 잠겼다.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해서 전 세계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거라고 봐야하죠.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거예요.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저희가 노력해야죠,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라며 말을 잠시 멈추었다. 이어 “지구란 집이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가만히 고민하는게 아니라 당장 불부터 끄는게 맞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밝혔다.

머털은 곶자왈작은학교에서 오름과 하천, 곶자왈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직접 행동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태 감수성과 평화 감수성이 밑바탕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기름진 밭, 토양을 일구기 위해 평화라는 씨앗, 환경이라는 지식을 던져주면 되듯이 잘 듣고 잘 봐서 오감을 사용하여 감수성이 만들어지도록.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노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머털.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노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머털.

머털이 이야기를 하다 창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창문 앞에 아이들이 서있었다. 이내 아이들은 창문을 열어 언제까지 노는거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노는 데 시간을 왜 정해? 계속 놀아! 많이 노는게 어때서”라며 답한다. 대답을 들은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다시 뛰어갔다. 아마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서 노는 것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는 씁쓸하다며 말을 덧붙였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방법을 몰라서 잘 놀지 못하는 줄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어른들도 어떤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듯이 아이들의 동기는 즐거움이거든요. 그 중 제일 즐거울 수 있는 건 노는 건데 잘 놀지 못하게 하고 있죠, 어른들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일반적인 아이들의 하루 일정표를 보면 오후 7시까지 학원은 기본이다. 집에 와서 학교와 학원 숙제를 하면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시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루 일과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습 위주로 짜여있다. 맘껏 무언가를 하고 꿈을 키울 수 있는 시간마저 없다.

'곶자왈작은학교' 입구 디딤돌에 낙서하는 아이. (출처=곶자왈작은학교 네이버 카페)
'곶자왈작은학교' 입구 디딤돌에 낙서하는 아이. (출처=곶자왈작은학교 네이버 카페)

그는 “제일 중요한 건 시간이고, 다음은 공간이에요. 그 다음이 친구죠. 사실 혼자서도 잘 놀기 때문에 시간의 중요성이 크다 생각해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이 노는 방법인거죠”라며 그럼에도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은 노는 방법을 모른다는 말만 늘어놓는다고 했다.

머털은 조심스레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다양하게 놀 수 있고, 쉴 수 있고,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마을마다 있으면 좋겠어요. 더 많고 좋은 기회가 생기면 환경과 평화뿐만 아닌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죠. 그냥 저는 아이들이 제주 자연을 누비며 세상을 배웠으면 해요”라며 “성적만 키우는 학교를 싫다고 여겨 자발적 낙오자가 되는 아이들이 용기를 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공간들이 만들어졌으면 해요. 그렇게 바껴야죠, 세상이”라고 덧붙였다.

정해진 세상의 틀에서 아이들은 꿈틀대고 있을지 모른다. 머털의 바람처럼 자연에서 놀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아이들이 용기내 세상을 무대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2021 신문제작실습 / 김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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