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위치한 오승훈씨의 농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위치한 오승훈씨의 농가)

대한민국에서 ‘제주도’ 하면 대부분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즙이 팡팡 터지는 귤을 떠올린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가족들과 바구니 속 귤을 나눠먹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경험일 것이다.

서귀포시 남원읍은 아름다운 제주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감귤 향기에 흠뻑 취하기에 좋다. 파란 하늘 아래 노랗게 익은 감귤 나무 뒤로 한라산 정상이 눈앞에 펼쳐친다. 볕이 좋은 어느 주말 오후, 서귀포를 바라보며 한참을 달리니 구불구불한 과수원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들어선 하우스에는 햇빛을 듬뿍 받으며 과실이 익어가고 있었다.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제주감귤박람회 친환경 부분에서 2년 연속 금상을 수상한 오승훈 (50) 씨를 만나보았다.

그가 운영하는 “감귤 BOSS”는 제초제, 화학비료,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감귤을 키워내고 있다. 올해 봄은 유난히 길지만 농가의 봄은 지체할 일 없이 한해의 수확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아침 작업을 끝낸 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다.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는 늦깎이 농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오승훈 농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오승훈 농부)

오승훈씨는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7년째 친환경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시에 살지만 서귀포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오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인다. 감귤 나무에 꽃이 필 시기가 다가와 방역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나무를 잘 돌봐야 겨울에 맛있는 귤을 수확할 수 있다.

오씨가 처음부터 농부가 될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기자를 지망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기자의 꿈을 접어둔 채 금융 계열 쪽에서 일을 했었다. 그렇게 2008년까지 금융인으로 일하던 오씨는 2012년 돌연 농부로 진로를 틀었다.

“나이가 40대에 접어들며 편한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농업이 저에게 부담 없이 참 편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당장은 수입이 적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일이 편안할 것 같아서 농사로 전업을 하게 되었죠.”

▲농사도 공부...보고 들으며 경험도 해봐야

오씨가 처음부터 친환경 농업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도 처음에는 화학 비료, 제초제를 뿌리는 관행농이었다. 그러나 관련된 교육을 받고 책을 읽으며 농약과 화학비료의 부작용을 알게 된 그는 소비자에게 좀 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그가 현재까지도 친환경 농업을 지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늦깎이 농부에게 친환경 감귤 재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선을 변경한 그는 친환경 농업의 가장 큰 과제인 수확량 감소와 일정하지 않은 맛을 해결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오씨는 감귤기초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 농업 교육을 들었다. 선배 농부들의 주변 조언들도 참고하며 농사 기술 역시 많이 배웠음은 물론이다.

오씨의 농부 생활에 시행착오가 없던 것은 아니다. 오씨는 “2016-17년도 겨울에 폭설이 내려서 저온 피해를 입었다. 이 부분은 제가 처음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냉해 피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많이 참고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주변 분들이 처음부터  다가와 조언을 해주신 것은 아니다. 제가 먼저 다가가서 도와드리기도 했다”며 “그 분들 덕분에 다른 농가에 비해 냉해 피해를 빨리 극복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신뢰를 구축하고 시장을 예측하라

(나무에 열린 새끼 귤. 나무 방역 작업을 꾸준히 해야 썩지 않고 맛있는 귤이 나온다.)
(나무에 열린 새끼 귤. 나무 방역 작업을 꾸준히 해야 썩지 않고 맛있는 귤이 나온다.)

오씨는 COVID-19 사태 이후 먹거리에 더욱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 당초 오씨의 거래는 주로 도소매점과 단체 급식 등을 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작년 COVID-19가 발생했을 때 그는 거래의 축소와 함께 과일 시장 자체가 위축될 것을 빠르게 예상했다.

이에 따른 오씨의 대응책은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었다. 그는 판매 방식을 과감히 전환해 SNS를 통한 홍보와 직거래 위주의 판매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납품하고 남은 물량은 허투루 폐기하지 않고 과즙과 주스 등의 가공 식품을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다. COVID-19로 인해 위축된 시장이 그에게는 새로운 접근을 시험해볼 기회였던 셈이다.

오씨는 “농부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 다른 일에 비해 스트레스가 덜하니 우선 농사짓는 재미가 있다”며 “수익 역시 괜찮은 결과가 나오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고 덧붙였다.

오씨는 본인과 다른 농가의 차별화된 점으로 신뢰를 꼽았다. 사람들은 작물이 정말 친환경으로 재배됐는지의 여부에 대한 의문이 많다. 오씨는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 스스로 친환경으로 재배를 했다고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종 품평회와 대회를 비롯한 자리에서 얻은 가시적인 실적 역시 신뢰에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이어 실적만이 아니라 관련 교육을 이수하는 등 농부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농가보다 미생물 배양을 많이 해서 감귤 나무에 자주 뿌려주고 있다”고 말한 오씨는 “이것 역시 농부가 기울일 수 있는 노력”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미생물을 주면 땅과 나무뿌리가 건강해지며 맛있는 감귤이 열린다”며 “많이 신경 쓰고 다분히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지름길”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천천히, 변함없는 자세로 농사하기를

(사진 찍는 기사를 응시하는 오승훈 농부)
(사진 찍는 기사를 응시하는 오승훈 농부)

오씨는 새롭게 농사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자세로 천천히 다가가라고 조언했다. 그는 “농사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절대 아니다”라며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농사에서 이론만큼 중요한 것이 경험”이라고 말한 그는 “많이 경험하고 노하우를 터득하라”고 덧붙였다. 변화무쌍한 자연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정함을 유지하는 것만이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먹거리가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식탁까지 오게 되는지를 왜 알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지만 승훈 씨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수입해오느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싱싱해 보이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정이 개입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역시 단순히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먹었을 때는 누가 길러서 어떤 과정을 통해 식탁 위로 오게 되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농부가 된 승훈씨는 내가 먹는 모든 것이 누군가의 정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 모르는 이들의 숨은 노동을. 그래서 승훈 씨는 과일을 심고, 수확하고, 가공하는 과정 모두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말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 두고두고 찾을 수 있는 농장을 만드는 것 말이다. 
수많은 바람과 비와 햇빛이 다녀가면 올해도 무사히 수확의 계절이 올 것이다. 땅은 주황빛으로 펼쳐진 밭의 풍경을 이미 품고 있다. 나무를 돌보고, 미생물을 뿌리고, 귤을 가꾸고, 그 밖에 수없이 많은 손길을 거쳐 결실을 맺는 것은 이제 부지런한 농부의 몫이다. <2021 신문제작실습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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