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는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면 바로 빌렸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책을 바로 빌리지 않고 시간을 조금 더 들여 작가 소개와 추천 글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책의 겉면만 보고 고른 많은 책들을 집으로 가져가서 보면 대부분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니었을 뿐 만 아니라 내 관심 분야가 아닌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 날도 제목과 표지만 보고 골라온 책들을 도서관 소파 옆 바닥에 쌓아 놓고 작가 소개와 추천 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책 표지만으로는 내용을 짐작 할 수 없는 어떤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밤, 호랑이가 온다ㅣ시오나 맥팔레인ㅣ시공사ㅣ2014

  풀이 우거진 숲 속에서 한 손에 우산을 든 묘령의 여인이 쳐다보고 있는 책 표지는 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작가 소개에 적혀 있는 한 문장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치매에 걸린 자신의 두 분 할머니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는 이 소설”. 이 문장을 읽고 나와 같은 환경에 처해있는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치매를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은 나와 같을지 아니면 조금은 다를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노인들 중에는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노인들은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 책의 주인공 루스는 70대 할머니이다. 그녀는 경제적 여유를 즐기며 평화로운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때로는 마음 속 공허함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노년의 사람들이 겪어야할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루스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일상을 보내는 일을 마지막 자존심으로 여기며 살아갔다.

  하지만 그녀에게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 어두운 그림자로 나타난 호랑이는 매일 밤 울음소리로 루스를 괴롭혔다. 호랑이가 찾아온 이후 갑자기 정부에서 보냈다는 요양사 프리다가 그녀를 찾아왔다. 후에 루스에게 프리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프리다는 루스의 삶에 깊숙이 파고든다. 그런데 출퇴근하는 줄로만 알았던 요양사는 루스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프리다의 오빠로만 알고 있었던 택시 기사 조지도 알고 보니 프리다의 연인이었다. 그 두 사람이 치매에 걸린 루스의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작가는 노년의 삶에 대해 실제적으로 그려내고 그들이 느낄 감정에 대해서도 사실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변해가는 환경에 의심이 들면서도 자신도 믿을 수 없게 만든 기억력 때문에 루스는 프리다에게 조종당해버린 것일 지도 모른다. 우리도 루스처럼 나이가 들어 나약해진 상태라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더욱 의지하고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흐려질 것이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질 것만 같은 범죄 스릴러를 느끼게 했다.

  책을 다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 적혀있던 밤은 노년기이고 호랑이는 치매였구나.’ 2주에 한번 요양원으로 가는 날이 오면 어딘가 복잡한 감정이 생긴다. 요양원에서 어떤 분은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육체로 힘들어 하시고 또 다른 분들은 육체는 정상이지만 자꾸만 정신을 놓쳐버린다. 그 중 대다수 분들이 치매를 가지고 계신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치매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봐서 그런지 나에게는 다른 어떤 질병보다도 무서운 병이다. 대부분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하거나 중요한 기억들을 매번 되새긴다. 하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기억을 지키려고 했던 그 행동과 노력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치매를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과 내 마음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겪기에는 어딘가 두려운 구석이 많고 다른 사람이 겪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없이 안타깝고 슬퍼지는 병. 내 주변의 어른들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하시곤 한다. “벽에 똥칠하면서 까지 살고 싶지 않다.”,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있을 바에는 그냥 죽어버리는게 나을 것 같지 않아?”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온전하지 못한 삶은 두렵다는 뜻일까? 우리에게 온전치 못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생각보다 크게 자리 잡고 있나 보다.

  만약 죽음과 온전하지 못한 삶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서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음이 아주 먼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선뜻 답을 내리기엔 힘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갑자기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루스처럼 우리에게도 호랑이가 찾아올 수 있다. 루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 2017 출판문화론 / 언론홍보학과 4학년 이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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